서울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과의 면담록 - 1차 초록

일시: 2008. 7. 31. 오후 3시 35분-오후 5시 40분
장소: 서울교구 교구장 집무실
면담자: 김택암, 안충석, 양  홍, 함세웅
주제: 선교의 관점에서 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역할

배  경

김택암 신부 등 4명의 사제들은, 서울교구 주교님들의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대한 부정적 시각 그리고 편견에 대한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중, 우선 가까이 있는 인천의 김병상, 황상근 신부님 등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여러 교구의 사제들이 함께 찾아가 이에 대한 성서신학적, 역사적 관점에서 대화를 나눌 필요성을 공감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선 서울교구의 사제들만 서울교구장을 뵙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모아 이날의 면담이 이루어졌습니다.

교구장과의 면담 목적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제들의 1차적 사명은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같이 하늘나라에 대한 ‘증거와 선포’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있음을 확인하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의 이제까지의 삶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일깨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 모두 세례 때에 이마에 성유를 바르며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봉사직(왕직)에 참여하겠다는 그 다짐과 약속과 기도의 실천임도 확인했습니다.

특히 사제단은 무엇보다 예언적 소명에 초점을 맞추어 “예”할 때에는 “예”하고, “아니오”할 때에는 “아니오”라고 하며 세상의 불의한 권력과 체제에 맞서 때로는 외치고 싸우며 지적하여 고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미소한 이웃, 약자, 가난한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불법에 의해 시달리는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가며 이들의 벗, 아니 이들 중의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사실 우리는 1974년 7월 6일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님이 김포공항에서 중앙정보부에 불법 납치당하고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함께 모여 기도하고 고민하고,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따라 “시대의 징표”를 읽으며 선후배, 동료사제들과 함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하였습니다. 감히 고백합니다만 이것은 하느님의 묘한 섭리의 손길임을 겸허하게 느끼고, 저희를 세상 한복판으로 끌어내신 하느님의 작용과 성령의 감도하심을 삶과 과정을 통해 깨닫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제단 창립 25주년을 맞은 1999년을 전후로 사제단의 구성원은 자연스럽게 후배사제들이 주축을 이루며 이른바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이지만 편의상 7,80년대 활동했던 사제들을 1세대라 부르고 90년대 이후의 주역들을 2세대 사제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른바 1세대 사제라 불리는 우리 4명의 사제들은 서울교구 내에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불길한 소식을 듣고 교구장을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면담 1차 초록

우리 4명 중 현재 은퇴하여 투병중이며 원로사목자라는 명예 칭호를 갖고 있는 대표격인 김택암 신부님이 말문을 열고 교구장께 인사를 드렸습니다.2

김택암 : 건강해 보이십니다. 기쁩니다. 사제단 창립이 34년이나 되었습니다. 30여년 전에 저희가 명동주교관에 오면 ‘젊은 사제들이 왔구만’ 하는 소리를 당시 선배 사제들로부터 들었는데 이제는 저희들이 그분들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정진석 교구장 :  여러분들이 모두 사제서품 40년 이상이 되었으니 현직에 있는 분들로서는 참으로 최연장 원로들이라 생각되는군. 옛날에는 은경축을 맞이해도 대단한 선배로 여겼는데 40년 이상이니 여러분이 명실공이 원로들이지.이렇게 얘기를 주고받으며 은퇴사제들에 대한 소식, 갑자기 돌아가신 김택구 신부님(김택암 신부님의 형님이며, 정진석 교구장과는 서품 동기)에 대하여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표하며 우리는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이어 김택암 신부님은 오늘의 면담목적을 설명했습니다.

김택암 : 오늘 저희는 사제단에 대해 교구장님께서 갖고 계신 염려와 걱정을 듣기 위해 왔습니다.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저희도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30여년 이상의 사제단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대로 괜찮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습니다. 교회 안팎의 많은 사회학자들의 평가를 보더라도 사실 우리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사제단 활동에 대해 전체적 평가는 긍정적입니다. 사실 사제단은 교구의 벽과 한계를 뛰어넘은 전국사제모임으로 세계적으로도 유일하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이 사제단의 힘이며 사제단 활동자체가 교회공동체 선교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진석 교구장 : 글쎄……. 평가야 뭐 세월이 더 지나가야지, 아직은 좀 이르다고 생각하네.

김택암 : 7,80년대에 대한 평가는 이미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제단의 일원으로 살아온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현재 저희 1세대 사제들은 뒤에서 성원하고 있으며 젊은 사제들, 말이 그렇지 이들도 이미 50대 전후의 사제들입니다. 이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투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침도 좋고 방향을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정진석 교구장 : 다 알아서 하는데 내가 뭘…….

김택암 : 그런데 뒤에서, 밖에서 사제단에 대한 말이 많다고 합니다. 밖에서 하는 말이야 뭐 상관없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도둑도, 집안도둑이 더욱 씁쓸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심정입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결코 의욕을 상실하지는 않습니다.

정진석 교구장 : 내가 뭐 직접 듣나, 사무처에 전화가 빗발치게 온다네. 내게 오는 전화야 비서실을 통하니까 내가 직접 듣지는 않지.

김택암 : 저희가 살아온 30여년의 삶은 온통 비방, 협박, 모함이었습니다. 전화 항의 정도야 뭐 문제가 되겠습니까?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나서서 말해야지요. 그 주제를 갖고 공청회나 심포지엄을 하던지 하면 되지요. 어쨌든 사제단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선교와 연계 했으면 합니다.

이렇게 첫 얘기를 마무리하고 두 번째로 안충석 신부님이 빽빽하게 준비한 문건을 들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핵심 가르침을 근거로 교회공동체가 우리 현실에 대해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힘주어 설명했습니다.

안충석 신부의 제언

우선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사회구조에 대해 우리가 어떤 선교자세로 임해야 하는가를 언급했습니다. 우리 사회현실 구조는 10- 20%의 부유층, 80-90%의 대다수 서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불행하게도 우리 교회공동체의 관심은 부유층에 더 향하고 있지 않나 반성하면서 선교2020이 실현되기 위해서라도 이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참고로 “선교2020”은 서울교구장의 선교목표로 2020년에는 우리 신자가 국민인구 대비 20% 증가하도록 노력하자는 표어입니다.)

특히 오늘날 교우들의 신심상황, 입교자들의 심리를 종합하면 천주교회는 자기식대로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식의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지난번 교황님 방문에 대한 교구장의 보고 설명에 대하여, 최근의 천주교 교세가 15%이상 증가했으며 2020사목선교에 대해 교황께서는 기뻐하셨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2020의 사목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관점에서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개신교권에서도 신자 감소문제로 크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 감소문제에 대해 우리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사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교란 바로 복음화운동이며 복음화란 바로 인간화를 뜻합니다. 인간화란 바로 예비선교이며, 선교이전의 복음화 과정과 징표이기도 합니다. 시대를 고민하고 예언자적 소명을 다하는 것이 바로 선교의 핵심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공동체를 세상의 성사(Sacramentum mundi), 세상을 위한 성사라고 고백하면서 바로 교회는 바로 성령께서 살아 움직이시는 공동체임을 역설했습니다. 성령께서는 교계제도를 통해서도 현존하시지만 또한 동시에 아래로부터 곧 백성들의 삶, 역사적 현실 안에서도 작용하시며 현존하십니다.

루카복음 11,2의 주님의 기도에서 “하느님(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라는 대목이 사해의 체사레아본(本)에서는 “당신의 영이 오시어”로 되어 있답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께서 오소서’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곧 성령의 현존이란 뜻도 됩니다.

교구장께서 불편하게 여기시는 사제단에 대해 30여년의 삶을 묶어 말씀드리면 그것은 그야말로 고난과 역경의 과정이었습니다. 그것은 외람되지만 예수님께서 그 당대에 반대 받으신 표징이셨던 것처럼 사제단도 현실 안에서 반대 받는 표징으로 존재했습니다. 30여년의 삶이 바로 반대받는 표징이었고 그것이 일상사였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교구장이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래로부터의 염원, 시대와 백성들의 염원, 우리 모두의 고뇌를 껴안는 교회공동체가 될 때 비로소 성령을 모시는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루카복음 9,49-50의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보편적 큰 뜻을 확인해야 합니다. 사제단이 30여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교회에 해를 끼치거나 반대한 적은 더구나 없었습니다. 사제단은 다만 백성들의 요구, 시대의 요구에 그때그때마다 성실하게 응답해 왔을 뿐입니다. 선교적 차원에서 2020의 선교사업을 위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실현키 위해서도 사제단 구성원들은 더욱 힘쓰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북한의 식량난을 고민하며 교회도 이제까지 열심히 실천해 왔지만 더욱 앞장서주기 바랍니다. 현 정권은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 등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남북관계가 경색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특히 정추기경께서는 서울교구장이지만 또한 평양교구장을 겸임했으니 더욱 앞장서서 7,80년대 우리 사제단이 시대를 고민하며 세상에 투신했던 것처럼 외연을 넓혀 남북의 물꼬를 트는 평화와 화해, 일치의 길잡이가 되기 바랍니다.

회고와 잡담

안충석 신부님의 열정적 설명을 듣고 정진석 교구장은 ‘안 신부님은 여전히 청년의 열정을 갖고 있구만’ 하고 평을 해 우리 모두 함께 웃으면서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안충석 신부님의 글씨체를 함께 확인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70년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늘 진술서를 작성하곤 했는데, 진술서를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작성합니다. 이것이 기본적 수사기법임은 뒤늦게 변호사들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진술을 거부할 헌법적 권리를 갖고 있었건만, 기초적 법지식도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어린양처럼 그들이 “쓰라!”하면 썼습니다. 그러나 몇 번을 써도 우리는 늘 하느님 나라의 증거, 선포, 백성들을 위한 봉사, 불의를 퇴치하고 정의를 구현해야 할 사제들의 예언적 소명을 꼭 진술에 담았습니다. 그러면 수사관들은 “하느님 얘기는 성당에서나 하시오!”하며 소리를 버럭 지르기도 했답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멍청한 사람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척하고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하느님 나라와 정의만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사제이며 신앙인임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안충석 신부님의 필체는 전무후무하여 본인 외에는 아무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보부원은 안 신부님이 고의로 그렇게 하는 줄 의심하고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 계속 반복해 쓰게 했답니다. 진술서를 제대로 읽을 수 없으니 안 신부님은 더욱 많이 쓴 셈이지요. 그래서 제가 이런 내용을 덧붙여 그날 설명했습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위한 방법으로서 말입니다. 그랬더니 안 신부님은 신학생시절 자기는 공부를 참 잘했는데 시험지에 아무리 명답을 써도 교수신부님들이 제대로 읽지를 못해 점수를 제대로 받지 못했노라고 응수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웃었답니다.

이어 세 번째로 함세웅 신부가 요약해 온 30여 항목을 차례로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앙체험과 그 성장과정, 플라톤의 ‘기억론’에 기초한 인간의 위대성, 기억이 인간의 대표적 특징이며, 하느님을 모실 수 있는 내적 힘, 그리고 역사를 관통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인간이 지닌 은총의 힘이고 또한 기억은 구약과 신약 등 성서의 핵심주제이며, 사실 우리 교회공동체의 보편적 전례기도인 미사성제도 바로 이 ‘기억’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함께 확인했습니다.

1960년 4·19혁명과 불사조의 교훈

1960년에 우리는 대신학교 1학년이었고 정진석 교구장은 대신학교 6학년 부제였습니다. 그때를 회상하고 또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당시 학장이셨던 한공렬 신부님(후에 전주교구장, 광주교구장 대주교로 계셨습니다)께서 1960. 4.26. 낮기도 양심성찰 시간에 바로 그날 오전 10시에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시면서 30여분에 걸쳐 행하신 즉석 강론을 회상했습니다.

불사조(不死鳥)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모두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불사조, 영원히 죽지 않은 새, 중동지방 신화에 언급된 새, 불사조의 이야기를 우리는 그날 처음 들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익히 알고 있지만 자기 몸을 스스로 불태워 새 알을 낳고 부활케 하여 새로운 불사조가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신화의 새 이야기입니다.

오늘 오전에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습니다. 이제 비로소 우리는 참으로 자유를 찾았습니다. 이 자유는 경무대(청와대의 옛 이름) 앞에서 경찰의 총에 스러져간 어린 학생, 청년, 시민들의 피값 덕분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분들 앞에 역사적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바로 자신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 준 우리시대의 불사조입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하신 성서말씀을 말 그대로 실천한 분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불사조는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표적 상징입니다.
그 후 불사조 신화는 우리 삶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저는 교부학을 배우며 또 가르칠 때 늘 옛 스승 한공렬 주교님의 감동적 말씀을 되새기곤 했습니다. 그리고 사제단 30여년의 삶이 바로 서울 교구장의 제1의 사목 목표인 ‘선교’ 바로 그것이었음을 상기했습니다. 오늘 이 초록에서는 30여 항목 중 4개 항목만 정리했습니다. 나머지는 앞으로 더 정리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날의 면담에서 ‘선교’라는 주제를 갖고 앞으로도 교구장님을 찾아뵙고 매월 2회 정도씩 주기적으로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말씀드렸고 교구장께서도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하셨습니다. 면담 중간에 양홍 신부님은 본당 미사 봉헌 때문에 자리를 떴습니다.

함세웅 신부의 제언과 설명

오늘 이 자리는 교구장과 교구사제들의 만남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 앞에 모두 한 형제들이며 또한 부족한 죄인들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이러한 기본적 평등성을 확인하고 죄성을 고백하면서 대화에 임합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정의를 찾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나선 신앙인들이며 이를 위해 봉사하기로 다짐하고 약속한 사제들입니다. 그리스도 신비체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계되어 있으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우리는 모두 다양한 은총과 역할을 지니고 있습니다.

각자의 역할과 은총, 그리고 행동이 서로 작용하여 선한 열매를 맺는다는 로마서 8,28을 새롭게 묵상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이제까지의 모든 선입견, 편견, 거부, 배제적 생각을 떨쳐버리고 상대방의 좋은 뜻을 하느님 안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면담의 목적은 포괄적으로 사목적 자세의 확인, 공유적 가치의 확인, 서로의 좋은 뜻을 확인하고 모으기 위한 첫 작업입니다. 앞으로 세부적으로 접근하여 사안별이랄까, 각론이랄까, 이런 내용 등을 종합하여 계속 대화를 통해 건의하고자 합니다.

1. 오늘 대화의 주제어(key word)는 선교입니다. 선교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상식적 관점에서 신자들의 수적 증가와 함께 본의적 의미에서 질적 향상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둘의 종합을 늘 염두에 두면서 무엇보다도 가치지향적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선교의 핵심은 따라서 하느님 나라와 정의실현입니다(마태 6,33). 정의는 하느님의 대표적 신적 속성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본질을 찾는 작업, 가치의 바른 순위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 귀의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탄생, 삶, 존재, 가르침에 충직하고 왜 예수님께서 그토록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율법학자들의 위선과 가식을 무섭게 질타하셨는지 그 참뜻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오복음 23장의 예수님의 질타어록집은 바로 우리 사제들, 주교들에게 1차적으로 해당된다는 관점에서 묵상하고 반성하며 온갖 가식을 떨쳐버려야 합니다.7

2. 세례의 원리를 생각해 봅니다. 대세의 원리를 묵상합니다. 세례란 누구나 하느님의 이름으로 베풀 수 있는 사람이 지닌 보편적 특권입니다. 저는 세례의 원리를 묵상하면서 세례란 바로 교계제도, 제도교회를 넘어서는 하느님 섭리의 손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 될 때에 이벽을 중심으로 행해진 세례집전이 바로 제도교회를 넘어선 하느님 은총의 영역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신념으로 유다교의 한계를 극복하셨고 바오로 사도도 그러셨습니다. 세례는 바로 평등의 원리, 공유의 원리, 나눔의 원리입니다. 세례는 온갖 형태의 독점과 독선을 배제합니다. 때문에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를 죽이고 이웃을 위해 새로 태어나는 은총의 성사, 부활의 성사입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살아온 사제단을 교구장이 껴안을 때 명실공이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일치 안에서의 다양성이 확인되며 교회공동체가 더욱 아름답게 번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른 선교의 자세입니다.

3. 저는 1990년경 원불교 관계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가 원불교에 대한 체험을 우리 선교와 연계하고자 합니다.
민족종교 또는 토속종교인 원불교는 불교, 개신교, 가톨릭에 이어 4대종교에 포함되기 위해 최근 20여년간 최선을 다했고 그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제가 확인한 그분들의 선교 방법은 교단 전체가 힘을 모아 세상 한 복판 곳곳을 찾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특히 놀란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역에까지 두려움 없이 찾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극우반공단체의 모임에서부터 이른바 극좌 또는 친북파로 분류되는 한총련 청년학생들 모임과 구속된 이들의 모임과 유가족회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스스로 또는 초대받아 기꺼이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저는 그것이 원불교 교단 차원에서의 선교 방법임을 감지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모형으로 삼아, 80년대에는 개신교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가 구성되었고 이어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그리고 90년대에는 원불교사회개벽교무단이 설립되었습니다. 불교와 원불교의 경우, 교단 차원에서 이 분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한국 현대사의 큰 역할을 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대해 천주교주교회의는 늘 견제하고 방해하고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 점이 매우 가슴 아픕니다. 도와주고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끌어 잡아당기고 길을 가로막고 방해만 합니다. 사제단은 바로 “증거와 선포”를 통해 선교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힘을 모아도 어려운데 격려는 못할망정 헐뜯고 외면하는 교회현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적어도 선교를 위해 사제단을 품고 껴안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공동체의 선익, 주교님들의 사목적 열매가 됩니다.

4. 함께 나누어야 할 사목적 고민과 시대적 번민이 있습니다.
김대중(토마스모어)씨가 대통령이 되어 어느 날 교구장님을 청와대에 초청하여 함께 식사를 나누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뉴스를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 즈음에 그분의 비서진과 자녀들이 저를 찾아와 아픈 얘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정진석 추기경께서 청주교구장으로 계시던 1980년대 광주비극이 있었습니다. 그때 김대중씨는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는데 1981년 초 그분의 가족들이 주교님을 찾아가 봉성체를 청했다는 것입니다. 여러 차례 정중하게 청했답니다. 그런데 당시 주교님께서는 끝내 이 청을 들어주시지 않고 거절하셨다는 것입니다. 주교님께 물론 곤혹스러울 수도 있었겠고, 전두환 신군부독재정권이 직·간접으로 압력을 가하기도 했었겠지만 돌이켜보면 이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가족과 비서진이 항변 겸 회고를 제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와 사목자에 대해 늘 깊은 회의와 불신이 남아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제로서 마음이 아팠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극복한 오늘과 내일의 희망을 확인하자는 말만 덧붙였습니다. 사형수가 청한 봉성체를 어떻게 사제가 거절할 수 있는가 고민하며 이를 선교적 관점에서 교구장께 말씀드렸습니다. 교구장은 묵묵부답이셨습니다.

우리는 교구장님과의 면담에서 사제란 과연 누구인가를, 또한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목숨을 건 신앙인의 결단의 자세’를 지닌 사람이어야 함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1차 초록을 정리했습니다. 앞으로 기도하면서 계속 면담록을 정리하여 대화와 생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전종훈 신부에 대한 안식년 인사발령

그 뒤 지난 8월 22일에 서울교구의 정기 인사이동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종훈 신부님의 경우 1년 반 만에 안식년으로 발령이 났고 이 때문에 언론은 이 인사발령이 시대정신에 어긋나며 정의의 원리에 반한다는 관점에서 이를 지적하고 비판했습니다. 전 신부님께 대한 인사는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일종의 보복조치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전종훈 신부님에 대한 안식년 예정 조치를 2개월 전에 듣고 이에 대해 동료사제들과 우리가 도울 일은 없을까, 우리가 역할이 있지는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교구장을 찾아가 대화를 나눈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면담의 또 다른 배경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없다하여 과정까지 묻힐 순 없습니다. 이 만남과 공개가 보다 건강한 교회문화 형성과 선교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9월 1일
순교자 성월 첫날에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