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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땅, 좋은 씨앗...


   

“슬퍼하며 우셨다.” <노우재(미카엘) 신부 / 부산교구>
   기쁨과희망   2020-04-03 17:26:15 , 조회 : 237 , 추천 : 32




텅 빈 성전에서 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바친다. 하나 둘 얼굴이 떠오른다. 어르신들, 어린이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항상 벅적벅적했던 성전이 비어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지금은 교우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직무를 다시 깨우친다. 사제는 교우들과 또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상황은 진정되기 시작했지만, 다른 나라 상황은 여전히 너무나 참담하다. 이탈리아 교회 역시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를 중단했고, 그때부터 교황님의 매일미사가 생중계되었다. 날마다 수척하고 초췌해지는 그분의 모습이 마음 아팠다.

3월 27일 저녁 성 베드로 성당에서 우르비 엣 오르비 축복식이 있었다. 부활과 성탄 때 거행하는 장엄 강복을 지금 베푸는 것이다. 화면상으로 로마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순례객과 관광객이 넘쳐나던 그 넓은 광장이 텅 비었고, 교황님 홀로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혼자가 아니셨다.

온 세상을 품에 안고 “주님, 저희를 버리지 마십시오.” 간구하셨고,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해주십시오.” 간청하셨다. 백성들을 위해 주님께 애원하는 그 모습은 모세와도 같았다. 그분 뒤로 눈에 익은 십자고상이 보였다. 성 마르첼로 성당의 십자가였다. 유학 생활 동안 도서관이 파하면 자주 들렀던 곳이다. 1519년 화재 때 아무 손상도 입지 않은 그 십자가를 앞에 두고 로마 백성들은 1522년 페스트에 맞서 기도하고 애원했다.

바로 그 십자가 앞에 교황님 역시 고개 숙이셨다. 이 십자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매우 극적으로 보여준다. 신음하는 얼굴, 부풀어 오른 핏줄, 경직된 근육, 창에 찔린 늑방과 가시관에 찔린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가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십자고상에 떨어져 흘러내리는데, 마치 십자가 위의 주님께서 피와 땀을 쏟으며 눈물 흘리시는 듯했다. 과연 주님은 비탄에 빠진 이들과 함께 절규하시고,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시는 분이다.

이탈리아 신학자 키오디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생사를 오가며 입원해 있다. 30분에 한 명씩 죽어가고 있는 베르가모의 교구 사제다. 그는 병상에서 미리 유서를 남기며, “철저하고 근원적인 고립감”이 이 질병의 가장 큰 특성이라고 했다. 호흡기와 소화기가 찢어져가는 고통 속에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격리되어 처절한 고립감을 느끼며 수많은 이들이 죽어간다고 했다. 유가족 또한 임종을 지키거나 장례를 치를 수조차 없어, 아무 인사도 못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야만 한다. 누가 감염될지, 누가 죽어갈지, 누가 가족을 잃을지 알 수 없는 끔찍한 죽음의 공포 앞에 사람들은 흐느끼고 슬퍼한다.

이런 고통과 절망과 죽음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겪으셨다. 그분만큼 세상의 고통을 잘 아는 이가 없다. 지금 온 인류가 겪는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시기에, 그분은 마음이 북받쳐 슬퍼하며 우신다.
친구 라자로의 죽음 앞에 눈물을 쏟으신 그분께서 지금도 우리 모두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신다. 주님께서 당신의 고통과 죽음으로 인류의 고통과 죽음을 끌어안으셨다. 그분께서 우리의 희망이시다.
질병에 짓눌린 세상 앞에서 그분과 함께 슬퍼하고 울어야 할 시간이다.


<노우재(미카엘) 신부 / 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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