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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떠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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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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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11:05:25 , 조회 :
2,539 , 추천 :
4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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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제기동 성당 모든 교우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드리며 이 글을 드립니다. 오늘은 8월 28일 성 아우구스띠노의 축일이며 어제 성녀 모니카의 축일을 지냈습니다. 이 두분 모자(母子) 성인을 기리며 무엇보다도 정성을 다해 하느님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특히 오늘 새벽미사에는 복사어린이들이 함께 와 저를 위해 기도하고 따로 축하식도 해주었습니다. 세 달 전부터 저는 저희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위해 사랑과 선행을 베풀고 기도해 주신 모든 교우 은인들을 생각하며 미사 중에 하느님께 축복과 은총을 청했습니다. 새 성당에 가서도 9월 한달 동안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전도서(코헬렛) 3장의 말씀과 같이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포착하고 때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 참 신앙인이며 그리스도인입니다. 때를 놓칠 경우 결정적으로 파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은 시간과 장소 안에서 살아갑니다. 사람은 시공(時空)의 존재다 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도 집착하는 집, 곧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 사실 따지고 보면 나만의 공간을 갖겠다는 염원인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공간 또는 장소가 꼭 필요하긴 하지만 공간에만 매몰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공간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집을 갖고 큰 집에서 산다하더라도 죽으면 3평 남짓한 무덤, 또는 그보다 훨씬 더 작은 납골함에 담겨있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톨스토이는 큰 집과 넓은 땅을 갖고 싶어 하는 소유욕에서 해방될 때에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사실 성당은 하느님의 집으로 우리 모두의 집입니다. 함께 나누는 공유(共有)의 장소입니다. 우리가 성당을 짓고 성당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장소, 이 때문에 성당은 거룩한 곳입니다. 우리는 성당에서 기도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늘 집과 가게, 일터와 직장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경건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제기동 성당은 작지만 아름답습니다. 70여년에 가까운 성당의 역사와 삶을 되새기며 우리 모두 집에 대한 애착과 사랑 못지않게, 더욱 큰 사랑과 관심을 하느님과 성당 그리고 이웃에 쏟도록 다짐합니다.
우리는 또한 시간 안에서 살아갑니다. 하루 24시간, 1주 7일, 한달 30일 그리고 1년 열두달입니다. 이렇게 긴 시간과 많은 날 동안, 내가 하느님께 마음과 정성을 쏟은 날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바쁜 일과 중에서도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어떻게 하든 꼭 이루어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하느님의 일, 이웃을 돕는 일, 민족과 역사를 생각하는 일에는 소홀히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과 우리의 생일, 기념일 등을 꼭 챙기듯 하느님의 날, 주일을 꼭 챙겨야 하며, 나아가 역사와 민족의 기념일도 기억해야 합니다.
시간에 대해 성서에는 두 단어가 언급됩니다.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입니다. 크로노스는 일반적 시간(time)이고, 카이로스는 결단의 순간, 구원 때(moment)입니다. 시간은 내가 기억하든 않든 흘러가는 그야말로 일반적 시간입니다. 그런데 “때” 라는 것은 내가 꼭 기억하고 챙길 때에만 가능한, 결단의 시간, 선택의 창조적 순간입니다. 이 때가 바로 구원과 은총, 하느님을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올해 우리는 ‘바오로 해’를 지내고 있으며 내년 2009년 (10.26일)은 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 100주년을, 내후년 2010년(3.26일)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습니다. 성당 사무실 정면에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제의 고백과 다짐’액자 원본을 놓고 갑니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기억과 기도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신앙인은 역사현실 속에 뛰어들어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도록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서의 핵심이며 사목헌장의 교훈입니다.
자, 이제 저는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상과 기억, 기도와 마음을 통해 늘 하나임을 확신합니다.
5년 전에는 낯선 얼굴로 왔던 제가 이제는 여러분 모두 한분 한분과 함께 끈끈한 정과 깊은 유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5년동안의 제기동 성당은 제 사제생활 40여년의 압축이기도 합니다. 조금도 해이하지 않고 아침 일찍 미사를 봉헌하면서 늘 새로운 은총의 힘을 얻었습니다. 시편을 노래하며 성서를 함께 읽고 매일 봉헌기도를 바치며 성당을 새로 꾸미기 위해 노력했고 모든 교우들이 기쁘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특히 매일미사에 함께하신 열심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교우들의 깊은 신심과 열정, 복사어린이들의 귀여운 눈망울, 초등부 어린이들과 중고등부 학생들의 신선함과 무한한 잠재력, 청년대학생 등 청년연합회원들의 젊음과 패기, 사목협의회원들의 묵묵한 봉사와 헌신, 남녀구역반장들과 친교모임, 연령회의 큰 희생과 봉사, 솔로몬대학의 활기찬 모습, 중년가장들의 모임인 토마스회의 중추적 역할, 장년가장모임인 꼴랭회의 든든한 밑기둥, 가나안혼인잔치의 기적을 이끌어내신 성모님의 행업을 재현하는 성모회, 레지오마리에 단원들의 한결같은 기도와 봉사 안젤리꿈 성가대의 천사 같은 목소리와 합창, 매일미사에 성실하게 임한 전례단 봉사자들, 젊은 부부로 이루어진 유빌라떼 성가대, 부부모임(M.E)의 신의와 기도, 예비신자들을 위한 교리봉사자들의 교육열과 정성, 복사단, 초등부, 중고등부 자모회 등의 노고, 이 모든 분들의 아름답고 선한 모습, 그 얼굴하나하나를 그리며 기도합니다.
특히 성사와 기도를 통해 만난 모든 분들을 기억합니다. 그동안 저를 통해 세례 받으신 모든 새영세자들과 첫영성체하신 교우들과 모든 어린이들, 혼인성사를 받으신 모든 부부들, 상담과 고백을 통해 은총을 되받으신 분들, 몸이 불편하여 집에서 매월 봉성체하시는 환자 할머니 할아버지들, 특히 세상을 떠나신 사랑하는 모든 교우들, 선조, 부모, 형제자매, 친척, 은인, 자녀 등 모든 분들을 기리며 하늘과 땅 우주만물을 포용하신 하느님께 정성껏 기도합니다. 순교자들과 선열들을 본받아 열정의 신앙인이 되도록 함께 다짐합니다.
5년 전에 이종환(미카엘) 신부님께서 떠나시면서 저를 잘 맞아주도록 당부하신 것처럼 저도 제 후임인 전 원(바르또로메오) 신부님을 제기동 모든 교우들이 반갑게 맞아 주십사 부탁드리며 인사를 맺습니다.
또한 정현진신부님과 본당, 유치원수녀님들, 서실비아 사무원과 황바오로, 김바울라 부부 그리고 소화유치원 어린이들에게도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8월 28일에
기도 중에 함 세 웅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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