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바람 좋은 가을 한 자락에 함세웅 신부를 만나다
10월 6일, 지난 5월 원불교 경산종법사와의 좌담에 이어 지명혁 위원장은 카톨릭계의 함세웅 신부를 만나고자 정동 배재빌딩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향했다. 함 신부는 ‘대화의 공약수 풀이’에 대한 낯선 이들의 걱정을 일순간 해소시켰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세상에의 따뜻한 관심으로 우리 위원회의 딜레마를 앞서 이해하고 있었다. 함 신부의 다방면에 걸친 깨어있는 사고와 편안하게 이어진 대화는 그 연륜을 새삼스럽게 했다.
함 신부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 그 당시 위원장의 자문요청으로 공연윤리위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단다. “교구 홍보부에 있을 때였는데 ‘신의 아그네스’ 건 때문이었습니다. 불필요하게 선정적으로 표현한 장면과 피 흘리는 표현의 구체성이 우려되었던 거지요. 저는 그냥 괜찮다고 했습니다.”
당시 위원회 측에서는 사회적으로 미칠 파장을 고려했는지 좀 반대해줬으면 하는 눈치였다고. “문제를 삼으면 오히려 더 화제작이 되니 그냥 가만히 두는 편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더군요.” 함 신부는 영화 마케팅과 군중심리까지 꿰뚫고 있었다. 심의과정과 결과를 이용한 노이즈 마케팅은 현재까지도 위원회를 힘들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연히 대화주제가 현재의 위원회 규제정도에 대한 궁금함으로 넘어갔다. 지 위원장이 “현재는 신청 작품에 등급만 부여하고 있습니다. ”라고 답하자, 함 신부는 “등급결정 때, 심의위원들은 영화를 제대로 다 보나요?” 라고 묻는다. “물론 당연히 다 보십니다. 하루 2편정도 심의하는데 평균 4~5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그렇게 거의 매일 심의가 이뤄진다고 하자 위원들이 모두 영화전문가겠다고 한다. 심의에 영화 전문가들만 참여하는 건 아니고 일반 청소년․시민단체 등에서도 참여하고 있으며, 종교인들도 좀 모셨으면 한다고 하자, 함 신부는 정중히 반대한다.
“종교인들은 심의위원으로 참여 안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종교계는 현재 너무 많은 분야가 있어 각기 시각차도 다르고 아우르기 힘들 겁니다. 창작의 자유가 있을 텐데 이를 종교적 관점에서 종교인들이 문제 삼는 형국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종교 관련 영화가 있을 때 위원회에서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자문 형태로 진행에 참여케 할 수는 있을 겁니다.”
종교인의 참여가 정확한 심의결정에 오히려 방해될 수 있으며, 어쩔 수 없이 자기 종교적 관점에서 작품을 해석하게 될 것이므로 작품의 폭을 좁힐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직원들을 참여하게 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만.” 함 신부님은 심의에 직원의 전문성 활용과 직원역할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위원회는 책임감 있는 직원들을 활용해야 합니다. 직원들에게 위원회 심의에 대한 긍지를 심어주어야지요. 위촉직 위원들에게 다 맡기고 행정수발만 할 게 아니라, 일련의 흐름에 중심을 잡아주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는 소견을 제시한다.
이어 위원회는 영화만 심의하는지, 방송·드라마의 문제에는 관여치 않는지 궁금해 했다.
“방송과 드라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고 별도의 기구가 있습니다. 위원회에서 15세관람가나 청소년관람불가로 등급분류를 한 영화에 대해, 케이블TV 등에서도 시청 시간대 구분과 등급표식 조치를 하고 있지만, 시·공간의 제약이 덜한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죠.”
위원장의 걱정에 함 신부는 방송프로그램이란 것이 상업성 배제가 불가해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며, 특히 애들도 즐겨보는 개그의 주제와 태도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선정·폭력 영상물의 증가에 대해 종교인들의 의견을 반영하려 한 것이라 하자, 함 신부는 “정말 요즘 청소년을 다룬 영화를 보면 깜짝깜짝 놀래요. 그런데 요즘 학교 학생들의 문화인 걸요.”라며 종교인보다는 청소년들의 사정을 잘 아는 학교 교사들이 좋겠단다. 물론 위원 구성에 교육계의 추천도 받고 있지만 학생들의 생활과 밀접한 일선 교사들이 일주일에 4-5번씩 반나절 이상을 참여해야 하는 심의일정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아울러 함 신부는, 영상물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주로 소비하므로, 주 소비층을 고려한 심리학자나 교육학자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어놓는다. “강의를 해 보면 중․고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소통이 어렵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영화 전공자보다는 교육학과 심리학 쪽 분들을 많이 영입했으면 합니다.” 이에, 현재 전공별로 추천받는 것은 아니므로 추후 보완해 가겠다는 지위원장의 답변이다.
마지막으로 청소년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를 부탁하자, “한 신부님의 강론 중 ‘빠삐용’이라는 영화의 일부를 발췌한 적이 있습니다. 그 메시지가 너무 좋았죠. ‘당신은 아무 죄도 없다. 단지 시간을 낭비한 죄다.’라고 하는데 시간의 소중함을 얘기하고 싶습니다.”라고 전한다. 이어 “위원회의 일이 정말 어렵군요. 그동안 잘 몰랐는데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인 것 같습니다.”라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2010/03/19 [달리보니 새소식] 에서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