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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 부마항쟁의 시대정신<희망세상 11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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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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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6 19:56:24 , 조회 :
3,266 , 추천 :
4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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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 부마항쟁의 시대정신
겨울의 문턱인 11월입니다. 가톨릭에서는 11월을 위령의 달로 정해 돌아가신 모든 분을 기리며 기억하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선조들 앞에서 자신의 삶을 뉘우치며 속죄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11월을 우리는 정화(淨化)의 달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종교인인 제가 부끄럽게도 '부끄러움'이라는 주제를 잊고 살았음을, 저는 지난 10월 9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부마항쟁 30주년기념학술심포지움' 에서 김상봉 교수의 강의를 듣고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철학교수인 그가 종교인인 저를 제자리로 이끌어준 셈입니다. 그는 부마항쟁의 원동력을 '부끄러움' 의 자각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철학적, 심리적 접근이며 더 나아가 매우 심오하고 근원적이며 종교적 해석이었습니다.
부끄러움은 인간만의 특성입니다.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는 인간이 아닙니다. 부끄러움의 대칭어는 뻔뻔함입니다. 부끄러움에 대해 우리말 사전은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 남을 대할 면목이 없는 것'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끄러움은 바로 양심의 표출입니다. 이와 같이 부끄러움은 양심과 함수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양심이 마비되고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같습니다.
부마항쟁의 주역인 시민 학생 청년들은 부끄러움을 깨달았습니다. 부산대학교가 유신대학인 점이 부끄러웠고, 부산, 마산, 창원 등 경상도 지역이 독재자의 아성인 점이 또한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움을 깨닫고 있는 한 시민들의 정신은 되살아나게 마련입니다. 살아있었기에 그들은 모두 일어섰습니다. 사실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국회의원직 제명사건이 부마항쟁의 촉발제가 되기는 했지만 그 근저에는 이 '부끄러움' 이라는 시대정신이 핵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상봉 교수는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부산, 마산 시민들은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와 일체감, 연대감, 동체감을 지녔었다는 사실입니다. 신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연대성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곧 한 형제자매라는 신비체(神秘体)의 원리를 함께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저는 줄곧 부채감, 속죄, 회개, 고백, 정직, 정의, 양심 회복이라는 도덕적 그리고 종교적 어휘들을 생각하면서 결국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초가 인간임을 그리고 인간은 필연적으로 도덕적, 종교적 존재이기에 근본적으로 도덕과 인륜이 인간의 핵심적 가치임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왜 부마항쟁정신이 오늘에는 부산과 마산에서 분명하게 계승되지 못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김교수는 그것은 부마항쟁정신과 박정희 독재와의 모순관계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모순 관계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데 박정희 체제에 대한 바른 청산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부마항쟁정신은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둘 중에 분명히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버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부마항쟁의 현실이며 우리의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이유를, 90년대 이른바 3당합당 이후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부끄러움' 이라는 핵심적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움'이 바로 부마항쟁의 시대정신임을 깨닫고 오늘의 현실에 대해 새삼 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학교, 사회, 경제, 문화, 정치,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 서 '부끄러움'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잊었다는 것은 양심의 상실, 가치관 상실, 도덕의 상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성의 상실이기도 합니다.
과연 오늘날, 불의한 현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부끄러워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봅니다. 모두가 온통 뻔뻔한 사람들뿐입니다. 뻔뻔하다는 것은 양심을 상실한 것입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어머니들 앞에서, 용산참사 비극 앞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끊은 연예인들의 호소 속에서, 삼천리금수강산이 마구 파헤쳐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국정감사장에서 우리는 뻔뻔한 국회의원들을 봅니다. 검찰총장, 장관, 총리 등 공직자들의 청문회에서도 우리는 뻔뻔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봅니다. 이중잣대 기준의 뻔뻔한 여당국회의원들 그리고 왜곡 보도로 일관하는 더욱 뻔뻔한 조․중․동의 보도를 보면서 슬픔과 분노를 느낄 뿐입니다.
그러나 슬픔과 분노에 앞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불의한 현실 앞에서 그리고 전태일 동지를 비롯한 숱한 민주희생자들 영령 앞에서 부끄러움을 고백해야 합니다. 부끄러움이 정화와 창조, 그리고 민주항쟁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선열들이여,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민주주의 실천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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