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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김대건의 시대적 고민
   함세웅   2007-06-18 17:10:27 , 조회 : 3,787 , 추천 : 554

7월 8일 주일에 저는 교우들과 함께 김대건 신부님을 기리면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저는 김대건 신부님이 새삼 서품 1년차였음을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1년차 사제를 어린사제 또는 애송이 사제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그런 1년차 사제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을 경외하고 있습니다. 그 힘의 신비는 과연 무엇일까 하며 새롭게 묵상합니다.

15세의 소년 김대건은 사제의 길을 걷기 위해 서울, 평양, 신의주를 거쳐 만주 벌판을 지나 상해 등 마카오에 이르기까지 무려 6개월 이상 걸어서 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고 마카오에 도착한 지 얼마 뒤에는 최방제가 죽었습니다. 가장 평범한 이러한 행업과 결과가 우리 모두를 숙연케 합니다.

어쨌든 1840년대에 김대건은 청년기에 접어듭니다. 당시 영국 상인들이 청나라에 아편을 보급하여 중국인들을 마약중독에 빠지게 하여 나라 전체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청국의 관리들은 아편을 압수하여 불살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편전쟁의 원인이 되었고 결국 청나라는 영국군 앞에 무릎을 꿇고 홍콩을 150년 동안 영국의 지배하에 두게 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그 당시 150년 후라면 얼마나 아득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홍콩 땅이 150년이 된 1995년에 오늘의 중국 정부에 되돌아갔고 홍콩은 또 영국 덕분에 민주주의의 고장이 되고 중국의 변화를 일으킬 동력의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어쨌든 대국으로만 알았던 청나라가 유럽 각국의 먹이가 되는 것을 지켜본 청년 김대건의 당시 마음이 어떠했을까 하고 상상해 봅니다. 약육강식의 냉혹한 국제현실 속에서 청년 김대건은 과연 우리 조국에 대해 어떤 고민을 지녔을까하고 또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 어느 구절에도 이러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 당시 프랑스 사제들의 신학교육은 다소 염세적이며 얀세니즘적 요소가 짙었기에 조국의 현실과 이른바 세속과 육체와 마귀라는 삼구(三仇)를 넘어서야 한다는 신심이 강조되었기에 청년 김대건에게서 이러한 세계사적 인식과 조국애를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소년기를 거쳐 청년기로 접어든 김대건에게서 이러한 시대적 고민을 마땅히 유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김대건은 서구학문을 체계적으로 배운 한국 최초의 유학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오늘 교우들과 함께 순교자 김대건을 넘어 조국의 삶과 함께하고자 했던 시대와 역사의식을 지녔을 김대건 청년을 그리며 상상하고 확인했습니다.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의 2007년 7월10알자 [함께 하는 사목]에 실린 함 신부님의 글을 펌했습니다.



              

   교회란 과연 무엇인가  임혜정  2007-06-14
10:13:04
   청년 김대건의 시대적 고민  함세웅  2007-06-18
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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