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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과연 무엇인가
   임혜정   2007-06-14 10:13:04 , 조회 : 3,283 , 추천 : 538

바티칸 신앙교리성은 윌리암 레바다 추기경장관 명의로 ‘교회에 대한 교리의 일부 측면에 관한 몇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이라는 6월 29일자 작성된 문건과 그에 대한 해설서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하나이며, 참된 교회임을 지난 7월 10일 언론에 공표했습니다.

그런데 국제 언론과 한국의 거의 모든 언론은 그 문서가 발표된 경위와 상황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가톨릭교회만이 유일한 진리의 교회라고 선언함으로 그리스 정교회를 비롯하여 성공회, 개신교 등 가톨릭 이외의 그리스도 교회를 폄하하여 종교적 갈등을 일으키고 분쟁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한겨레신문은 7월 13일자 사설을 통해 “베네딕도 16세, 다시 종파 간 충돌로 가려는가?”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독일 레겐스브르크 대학에서 행한 강연, 곧 “이슬람은 사악하고 잔인한 종교”라는 비잔틴 제국 마누엘 황제의 말을 인용하면서 베네딕도 16세가 이슬람권의 분노를 자아내고 외교적으로 사과한 점 등을 염두에 두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인 권오성 목사는 경향신문 7월 16일자 기고문에서 “가톨릭만이 유일한 교회인가?”라는 제목으로 베네딕도 16세의 주장을 신학적으로 지적하고 비판했습니다. 그 외에 많은 신문, 라디오, TV 그리고 여러 인터넷 매체들이 교황의 주장에 대해 호된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티칸 신앙교리성에서 있었던 일은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한 사실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현 교황 베네딕도 16세는 라칭거 사제신학자 시절부터 추기경장관때까지 대체로 수구 전통적 교리를 주장해왔습니다. 반면 한스 큉 신부와 발터 카스퍼 추기경을 비롯한 진취적 신학자들은 보다 개방적 교회론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이번 문서의 배경은 신앙교리성이 진취적 의견을 주창하는 신학자들이 우세한 신학자문위원회에 일종의 길잡이로 제시한 내용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엄밀한 의미에서는 가톨릭교회 공동체 내에서 가톨릭인들이 지녀야 할 교회관을 바티칸 신앙교리성은 베네딕도 16세의 다소 수구 전통적 시각에서 해석한 것을 공식문서화한 것 뿐입니다. 이것을 언론과 특히 독일의 개신교권에서 새삼 문제 삼고 나선 것입니다.

이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헌장> 8항의 선언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길잡이일 뿐입니다. 그 핵심 구절을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 세워진 조직된 사회로서의 이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이 이끌고 있는 가톨릭교회 안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이 조직 기구 밖에서도 그리스도교회의 고유한 선물인 성화와 진리의 많은 요소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가톨릭적 일치를 이루도록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8항 2단락)

Haec Ecclesia, in hoc mundo ut societas constituta et ordinata subsistit in Ecclesia catholica, a successore Petri et Episcopis in ejus communione gubernata, licet extra ejus compaginem elementa
plura sanctificationis et veritatis inveniantur, quae ut dona Ecclesiae Christi propria, ad unitatem catholicam impellunt.

여기서 핵심 단어는 ‘subsistit’입니다. subsistere라는 라틴어 동사의 3인칭 단수인 ‘subsistit’은 ‘굳게 자리잡다’, ‘서 있다’는 뜻입니다.

신학자들은 하느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교회가 곧 가톨릭교회이다(est)라고 표현치 않고 “가톨릭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다(subsistit)”라고 표현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느님 교회는 다른 교회공동체 안에도 자리잡고 있다는 암시라는 것입니다.

이번 바티칸 신앙교리성의 문건은 바로 이 “자리잡고 있다”(subsistit)라는 단어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학적 새로운 해석을 꾀한 것 뿐입니다.

때문에 우선 언론에 대하여 언급하자면 언론은 그 속성상 사실 보도에 충실하기 보다는 쟁점을 부각하여 결과적으로는 본뜻을 왜곡하는 큰 우를 범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신문기자들을 일컬어 수박 겉핥기식의 지식을 가진 이들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론에 대해 늘 사실 확인과 배경 등, 이른바 심층보도를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문건 발표에 대한 종합 성찰>


우선 바티칸 신앙교리성의 이번 문건에 대해 우리는 세 가지 관점에서 함께 반성하고 종합하고자 합니다.

첫째, 신앙교리성과 교황베네딕도 16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그토록 강조했던 사목적 배려(sollicitudo pastoralis)를 다하지 못한 사목적 미숙과 우를 불러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선언이나 가르침은 그것을 듣고 영향받을 이들을 생각하면서 사목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이 문건은 사목적 배려를 잊고 교회론에 대한 신학적 또는 법적 정의(definitio canonica)만을 앞세운,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점으로 사료됩니다. 이 시점에서 구태여 분쟁이 예견되는 언급을 꼭 해야 했는지 이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사실 로마교회와 그리스정교회가 갈라진 것은 하느님을 믿고 사는 소박한 신자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이른바 교회의 통치자들이 세속의 원리를 따라 백성들을 권력으로 짓누르려 해서는 안된다는 마태오복음 20,25의 가르침을 제대로 살지 못한 부끄러운 결과일 뿐입니다.

로마교회와 그리스정교회의 분열은 성직자들의 욕심에서 비롯 되었습니다. 그리고 450여년이 지난 어느날, 곧 1965년 12월 7일에 교황바오로 6세와 그리스정교회의 아테나고라스 총대주교가 서로 파문을 철회하면서 사랑과 일치를 확인했습니다. 교황과 총대주교가 서로 파면하면 교회가 갈라지고 이분들이 서로 파문을 철회하면 교회는 일치됩니까?

이것은 오직 법적 행위, 외적 행위일 뿐입니다. 우리가 파문하고 갈라졌다하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전혀 갈라져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와 전혀 다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 역사 현실을 뛰어넘어 계시는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한스 큉과 보프 등 진취적 신학자들은 도대체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였을까 하며 끊임없이 자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는데 생겨난 것은 이러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로마교회와 같은 이러한 법적 조직, 그리고 로마제국을 본받은 이러한 권력 구조, 중앙집권적 교회를 예수님께서는 결코 세우시지는 않았다고 확언하면서 큰 회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고민은 우리가 모두 하느님과 신앙 안에서 가시적 교회를 넘어설 수 있는 초월적 은총을 지니고 있다는 설명도 됩니다. 이러한 큰 시각으로 법적 교회의 정의(定義)와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둘째는 개신교권의 오해와 미숙한 이해입니다.
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유일한 사도적 계승이나 진정한 교회성이 개신교 안에서는 결여되었다고 바티칸이 주장한다 한들 그 가르침에 매몰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가르침을 훨씬 더 높게 뛰어넘으면 될 것을 말마디를 갖고 논쟁하는 것은 힘의 소모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가톨릭만이 교회이고 개신교는 공동체라고 한 표현에 대해 몹시 언짢아하고 있는데, 이것은 교회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개신교는 오히려 더욱더 큰 긍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교회(ecclesia)란 사회(societas)라는 말과 상통하는 일종의 법적 개념이고 공동체(communitas)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끈끈한 연대모임으로 교회라는 법적 개념에 앞선 성서적 표현이기에 공동체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에 훨씬 더 가까운 말마디이며 표현입니다.

때문에 법적 용어와 성서적 용어를 함께한 교회공동체라는 말마디는 오히려 더 심오하고 풍요로운 표현입니다. 따라서 개신교권에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선언으로 가톨릭이 더욱 열리고 포용적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번의 신앙교리성 문건으로 가톨릭교회가 오히려 더 미숙해졌으니 웬일이냐? 이렇게 묻고 지적한다면 가톨릭이 더욱 부끄러워질 것입니다. 이러한 여유 있는 접근이 훨씬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이미 앞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언론의 정확하지 못한 보도입니다. 사실 교회론은 성서적·신학적·역사적으로 종합하여 고찰할 신앙적 주제로 한두 마디로 압축하여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신비 자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관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다양한 교회관을 같은 믿음, 같은 세례, 하느님께 대한 같은 사랑 안에서 종합하는 일치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그리고 일치 안에서의 다양성을 성서는 교회와 인간의 신비를 인체에 비유하면서 인체 안의 여러 기능과 작용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교회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우리 신앙인은 모두 각 지체로서의 유기적 관계 안에서 살고 있다고 설명하곤 합니다.

그러나 인체 내에서도 상처난 부분 또는 수술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예를 교회에 응용하면서 여러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건강한 몸을 지탱하기를 바라듯 교회공동체도 건강한 교회공동체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행 실천과 봉사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역사적으로 잘못되고 부족한 점을 겸허하게 고백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영육으로 구성되었듯이 교회도 또한 신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함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번 문건은 인간적 요소를 강조한 것으로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신적 요소를 우리는 또한 직시해야 합니다.

이 점을 함께 고찰할 때 풍요로운 교회관을 지닐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언론이 함께 언급했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고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논쟁과 분쟁보다는 오히려 모든 교회공동체가 언제나 서로 보완적임을 깨닫게 하는 창조적 기사를 작성해 주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논쟁과 분열의 현장에 살고 있습니다. 바티칸의 가르침과 교황의 말 한마디가 일선에 살고 있는 우리 사제들과 참으로 소박한 우리 신자들에게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는지 늘 사목적 배려가 앞서야 함을 그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일치운동과 종교 간 대화를 통해 참으로 포용적이며 개방적 그리고 인간적·상식적으로 평가받던 가톨릭교회가 하루아침에 분쟁의 당사자로 지목되었기에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픕니다. 그리고 이 점을 헤아리지 못하는 교회의 관리자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더 큰 지혜를 주시길, 그리고 이 때문에 상처받고 마음상한 모든 이들을 하느님께서 치유해 주십사하고 기도드립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신부님들과 교우들과 함께 교회론에 대해 제기된 문제점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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